"장애인도 시도·좌절하며 성장할 기회 필요해요"
왜 탈시설이어야 하는가 (중) 시설 밖에서 바라본 세상
가족과 외출할 때도 허락 필요
퇴소자들 "가축이었다" 회상
시설 밖 혼자선 화장실도 난관
그럼에도 탈시설 만족도 높아
"어떻게 살지 선택권 주어져야"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의 생일은 두 개다. 하루는 어머니 배에서 나온 날이고 또 다른 하루는 시설에서 나온 날이다. 이들은 시설에서 나오는 것을 '새로 태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시설과 달리 바깥세상은 불완전하다. 언제 어디서 변수가 생길지 모르고 순간순간 좌절을 안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시설 밖으로 나오길 잘했다고 말한다. 더 빨리 나오지 못해 아쉽다고 한다. 이들에게 탈시설은 어떤 의미일까. 시설을 나온 중증장애인 3명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ㄱ(48) 씨는 16년 동안 시설에 있었다. 시설 밖으로 나온 건 2011년 3월 무렵이다. 이후 자립홈에서 8년 가까이 지내다 2019년 8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에 입주했다. 자립홈은 자립을 준비하며 단기간 생활하는 장애인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곳이다.
ㄱ 씨는 시설에 살던 자기 모습이 가축과 같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방 하나에 14명이 살았다.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도 한 대밖에 없어서 여름에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밥 주면 밥 먹고 불 끄면 자야 하고 말 잘 듣는 가축이었다. 이렇게 살다가 죽고 싶지는 않았다."
뇌병변 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ㄴ(36·창원시 진해구) 씨는 24년 만에 시설 밖으로 나왔다. 그의 두 번째 생일은 시설을 벗어난 2017년 11월 30일이다. 자립홈을 나와 독립한 건 2018년 4월이다.
ㄴ 씨 역시 단체 생활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 30분에 밥 먹고 밤 9시에는 불을 끈다. TV를 더 보고 싶어도 자야 한다. 시설에서는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뇌병변 장애와 지적 장애가 있는 ㄷ(28·창원시 의창구) 씨는 20년 만에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ㄷ 씨의 두 번째 생일은 2018년 4월 3일이다. 지난 3월부터는 자립홈을 나와 혼자 살고 있다. ㄷ 씨는 "부모가 와도 외출하려면 시설에 신고하고 서명받아야 한다. 어디 나갈까 봐 거주인을 감시하기도 한다. 지금은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컴퓨터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설을 나오기까지 여러 반대에 부딪혔다. ㄱ 씨는 "처음 시설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가족이 반대했다. 혼자서 못 살 거라고 했다. 그때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시설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고 계속 말했다. 가족을 설득한 끝에 16년 만에 시설을 벗어났다"고 전했다.
▲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증장애인 3명이 지난 22일 밀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춤을 배우고 있다는 1년, 길게는 8년간 생활했다. 자립홈은 자립을 희망하는 장애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인들은 자립홈에서 사회생활이 어떤 것인지, 인간관계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다.
ㄱ 씨는 "30년 넘게 살며 처음으로 교육이라는 것을 받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는 것이 좋았다. 교육뿐만 아니라 직장 체험도 하면서 사회생활 같은 인생 공부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용기를 내서 시설 밖으로 나왔지만 바깥세상은 여전히 이들에게 냉정했다. 혼자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고 집 앞에 잠깐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ㄴ 씨는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다 보니 밤에는 혼자 있어야 한다. 자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못 간다. 그래서 항상 기저귀를 차고 잔다"고 불편을 토로했다.
ㄷ 씨는 "여전히 장애인이 갈 수 없는 곳이 많다. 거의 유일한 이동 수단인 장애인 콜택시는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 계단이 있는 곳은 아예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시설 밖으로 나온 장애인도 있지만 여전히 시설에 사는 장애인도 많다. 경남에는 지난 1월 기준 1506명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무사히 안착한 이들은 시설에서 살 것인지 나올 것인지 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ㄱ 씨는 "무조건 시설을 없애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나와서 살아보고 밖이 더 좋으면 그대로 살고 시설이 좋으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권이 장애인에게 없다"고 토로했다.
ㄴ 씨는 "시설에 있을 때는 장애인 지원 서비스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자립홈이라든지 활동보조라든지 이런 것들을 일찍 알았다면 더 빨리 밖으로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민혜 경남장애인자립센터협의회 사무국장은 "시설은 장애인들이 실패하고 좌절할 기회까지 빼앗고 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좌절하면서 성장한다. 장애인을 무조건 보호하고 격리하기보다는 사회 공동체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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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경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