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점자블록 없고 공간 협소… ‘문턱 높은’ 무인민원발급기
경남장애인인권포럼 309대 점검
95% 점자유도블록 불량·미설치
문턱·수동문·좁은 입구 접근 곤란
“장애인 차별 여전… 제도 보완을”
경남지역에 ‘무인민원발급기’ 설치가 늘어나고 있지만, 장애인을 위한 적절한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와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경남장애인인권포럼은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도내 8개 지역의 무인민원발급기 총 320대 점검 결과를 22일 발표했다. 실제 조사는 기기가 고장 났거나 철거된 경우, 보안상 출입이 제한된 경우 등 11대를 제외한 309대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번 조사는 지역사회에 보편화되고 있는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가 장애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진행됐다. 조사는 창원시와 김해시, 양산시, 진주시, 거제시, 통영시, 사천시, 밀양시 등 8개 시 단위 지역에 설치된 무인민원발급기의 접근성과 편의성 등에 관해 진행됐다.
지난 22일 경남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남지역 무인민원발급기 장애인 이용실태 점검 및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에겐 ‘무용지물’= 조사 결과 10곳 중 9곳은 무인민원발급기까지 이어지는 동선에 점자유도블록이 적절하게 설치되지 않아 시각장애인 접근조차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점자유도블록이 불량(21곳)하거나 설치되지 않아(274곳) 시각장애인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무인민원발급기가 95%(295곳)로 나타났다. 특히 김해시와 진주시, 사천시 경우 단 한 곳도 무인민원발급기 앞에 점자유도블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인민원발급기 관리상태가 불량하거나 시각장애인용 음성안내 기능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무인민원발급기 음성안내가 되는 곳은 카드 투입구 31.7%(98대), 지문인식기 34.6%(107대), 출력구 위치 33.6%(104대)로 조사됐다. 양산시와 사천시, 밀양시는 음성으로 안내되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이어폰 포트는 모두 설치돼 있었지만 실제 사용이 가능한 곳은 절반(54.7%) 수준에 불과했다. 이어폰 포트의 위치가 안내 음성으로 나오는 경우도 42.7%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휠체어를 탄 경남장애인인권포럼 조사단원이 문턱의 단차로 인해 무인민원발급기가 설치된 장소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경남장애인인권포럼/
◇경사로 없이 계단만…출입구에 문턱도=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접근성이 열악한 곳도 다수 확인됐다. 휠체어 장애인이 무인민원발급기가 설치된 장소까지 접근이 어려운 곳은 모두 14곳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창원시(8곳)가 가장 많았고, 거제시 3곳, 통영시·양산시·밀양시 각 1곳이다. 접근이 어려운 이유로는 계단(6건), 문턱(4건), 기둥(1건), 기타(3건)로 집계됐다.
장애인이 무인민원발급기에 도착했어도 기기 자체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지역별로 창원시 12곳, 양산시 8곳, 통영시 7곳, 밀양시 5곳, 거제시 4곳 순이다. 접근이 어려운 이유는 수동 출입문 21건, 공간 협소 15건, 부스 12건, 적재물 3건, 기타 4건이었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경우 자동문이 아니면 스스로 문을 열고 진입하지 못했고, 출입구가 좁거나 부스 내부 공간이 좁아 이동이 어려웠다. 휠체어가 회전할 공간이 충분히 마련되지 못해 정면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곳도 16.5%(51곳)가 있었다.
◇장애인 차별 여전…제도 보완 필요= 지난 22일 경남도의회 대회의실에서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전현숙 도의원은 무인정보단말기 접근성 관련 법률과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고 경남도 차원의 편의 증진을 위한 사업 추진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021년 7월 개정된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무인정보단말기를 설치·운영하는 경우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정당한 편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시행령이 시행됐다,
그러나 법 시행일 이전에 설치한 무인정보단말기의 경우 2026년 1월 27일까지 장애인에 대한 무인정보단말기 이용 편의 제공 의무가 유예돼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장애인 차별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게 전현숙 도의원의 주장이다.
박은원 경남장애인인권포럼 활동가는 “이 같은 문제들은 비장애인 민원인을 중심으로 무인민원발급기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추론해 본다”며 “장애인의 편의도 고려해 정기적으로 관리 점검하고, 장애인 차별의 상징인 ‘단차(높낮이 차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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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경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