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경남 종횡무진 "장애인도 함께 잘 사는 길 찾으려고요"
출산 과정서 언어장애 등 생겨
2007년부터 장애인권 모니터링
주민센터 경사로 설치 등 성과
냉소 아닌 '연대의 응원' 강조
"취약계층 등 모두 연결돼 있어"
장애인에게 ‘턱’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갈라 놓는 상징적인 구조물이다. 비장애인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턱은 일상 곳곳에 있다. 집 안에도 있으며 공공기관, 식당에도 있다. 장애인들에게 턱을 없애는 일은 어느새 ‘차별’을 지우는 일이 됐다.
공기처럼 만연해진 차별을 일부러 찾아 나서는 이들이 있다. 장애인 활동가들이다. 그들은 장애인 당사자로서 차별에 누구보다 예민하다.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가 편하다’는 생각으로 지역사회 곳곳을 누빈다. 경남에서 16년째 일하는 장애인 활동가 서지은(46·창원시 성산구) 씨를 만났다.
장애인 활동가 서지은 씨가 지난달 27일 창원시 의창구 한울타라지앙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서 씨는 중도 장애인이다. 20년 전 첫째 딸을 출산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로 언어장애와 뇌 병변 장애가 생겼다. 처음 4년은 사지까지 마비돼 병원과 집에 누워만 있었다. 남편은 딸이 태어난 지 100일쯤 될 때 도망쳤다. 그는 장애가 생긴 게 딸 때문이라고 믿었다.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늘 무서운 얼굴로 딸을 바라봤다.
“딸이 내 장애의 원인이라 생각했어요. 직접적인 표현은 안 했지만 굉장히 미워했지요. 근데 어느 날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와 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잠깐 있다가 다시 돌아서더라고요. 그 순간 아, 내가 큰 잘못을 하고 있구나. 아이도 다 알고 있구나.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는 내가 아니라 딸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서 씨가 딸을 위해서라도 살아야겠다 결심한 순간이다. 그는 그날 이후 장애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찾아다녔다. 이후로는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언제나 청소 같은 잡다한 일이었다. 장애인 단체에서조차 불필요한 존재였다.
“장애인은 무조건 부족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여겨졌어요. 제가 할 수 있다 해도 저한테 안 맡겼지요. 월급도 떼이기 일쑤였습니다. 장애인 차별은 그전부터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2007년부터 장애인 인권 모니터링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부터는 장애인 인권강사로 인식 개선 교육도 겸하고 있다. 그가 처음 모니터링 활동을 하던 때만 해도 대부분 주민센터에 경사로가 없었다. 그는 2007년 당시 경남지역 20개 시군 주민센터를 한 곳 한 곳 다녔다.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시정 공문을 보냈다. 그 결과 경사로가 하나 둘 생겨났다.
“이제는 대부분 공공기관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요. 당사자 이야기는 반영되지 않은 대부분 보여주기식입니다. 경사로가 급하거나 좁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게 대표적인 예지요.”
편의 시설은 부족하지만 조금씩 변화했다. 반면, 장애인 인식은 때로는 후퇴했다. 서 씨가 시설 개선과 더불어 인식 개선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코로나19 초창기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 저도 마스크를 사려고 집 근처 약국을 찾았습니다. 제가 천식이 있어서 기침을 했는데 어떤 사람이 이 시국에 장애인이 집 밖에 나와서 민폐를 끼치느냐고 하더라고요. 순간 제가 외계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서 씨는 장애인만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모니터링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저상버스나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노인, 어린이, 임산부들 입니다. 이런 편의 시설을 장애인들이 목숨 걸고 만들었다는 것만이라도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는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투쟁에도 관심이 많다. 장애인을 향한 냉소보다는 연대의 응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저 같은 중도 장애인도 많습니다. 또 취약계층은 신체적 장애가 없어도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사회적 장애를 겪습니다. 결국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거지요.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가고 지하철을 타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장애인만 잘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잘사는 길을 찾으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저작권자 ⓒ e-경남 사회복지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휘경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