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참정권, 현장에서는 외면

투표보조권리 2년 만에 되찾았지만
사전투표소에서는 보장 안 돼
신체장애 없다며 허용 거부
보조인-선거사무원 실랑이도
"본투표서 혼선 없도록 준비"



▲ 한 발달장애인이 4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행정복지센터 사전투표소 1층에 마련된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email protected]




발달장애인 참정권, 현장에서는 외면

투표보조권리 2년 만에 되찾았지만
사전투표소에서는 보장 안 돼
신체장애 없다며 허용 거부
보조인-선거사무원 실랑이도
"본투표서 혼선 없도록 준비"
발달장애인들이 법정 소송 끝에 2년여 만에 투표 보조 권리를 되찾았지만 투표 현장에서는 여전히 장애인 참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오후 1시께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행정복지센터 1층 임시 기표소. 이날 발달장애인 투표를 도우러 온 창원장애인인권센터 직원들과 현장 선거사무원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김영우(26) 장애인인권센터 실무자가 발달장애인이 네모 칸 안에 투표 도장을 찍는지 확인하려고 기표소에 같이 들어가자 선거 사무원이 이를 제지했다. 김 씨는 선거 사무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투표 보조를 하게 해달라고 다시 요청했지만, 투표를 하려는 발달장애인이 신체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발달장애인들은 홀로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를 마치고 나왔다.

김 씨는 "발달장애인들이 손떨림 같은 신체장애가 없다고 하더라도 낯선 상황에서 당황하면 투표를 제대로 못할 수 있다"며 "발달장애인들이 투표용지에 제대로 표기했는지 확인할 수 없어 답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투표 보조 매뉴얼이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현장에 제대로 적용이 안 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발달장애인들은 2020년 4월 제21대 총선 때 선거사무지침에서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지침이 삭제되며 참정권이 침해됐었다. 이후 발달장애인들은 참정권 보장 차별구제청구소송을 벌이며 투표보조 지원을 요구했다. 그 결과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법은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지원 임시조치 신청 건'에 대해 조정 성립을 결정했다.

하지만 투표 보조 문제를 비롯한 현장은 아직도 발달장애인들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모습이다.

이날 투표에 참여한 발달장애인 이종섭(62) 씨는 거동이 불편해 2층 투표소 대신 1층 임시 기표소를 이용했다. 문제는 임시 기표소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옆에 있어 오가는 사람이 많고 주변 공간이 협소한 탓에 이 씨는 대기하는 내내 불편을 겪었다. 이 씨 역시 투표 보조를 받지 못했다.

그는 "사람이 너무 많이 지나다녀서 정신이 없었다"면서 "대기 공간이 좁고 오래 기다리다 보니 몸이 아프기도 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소송에 참여했던 이주언 법조공익모임 나우 변호사는 "최근 법원에서 선관위와 합의한 내용 중 하나가 발달장애인이 신체적 어려움이 없더라도 동행한 보조인이 사정을 설명하면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투표 보조를 제대로 못 받은 발달장애인 사례가 계속 발생하면 차별구제 소송이나 손해배상청구 등 법적인 조치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는 선관위 매뉴얼만 수정했는데 완전한 참정권 보장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직선거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발달장애인들 중 신체장애가 없다고 하더라도 요청이 있으면 현장 투표관리관 판단 하에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며 "다만, 매뉴얼에 적힌 내용이 그대로 현장에 적용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 투표 때는 이와 같은 혼선이 없게끔 다시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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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경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