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투쟁 선봉 자랑스런 밀양인
7월 8일은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꽃다운 2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밀양출신 독립운동가 최수봉 의사의 순국일이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밀양시 상남면 마산리 소재 최수봉 의사 순국기념비에서는 의열투쟁의 선봉 최수봉 의사 순국 제100주기 추념식이 개최된다.
밀양향토청년회 지도회(회장 민경우)가 주최·주관하며, 밀양시, 밀양시의회, 경남동부보훈지청, 성균관유도회 밀양시지부 상남면지회 등이 후원하는 이날 추념식에는 기관단체장과 시민 등 150여 명이 함께할 것으로 예상된다.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으로 널리 알려진 최수봉 의사는 1894년 3월 3일 밀양군 상남면 마산리에서 출생하여 밀양공립보통학교 3학년 재학 시 일본 황실 모독죄를 범한 불온학생으로 퇴학당하고,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중학과정인 사립동화학교에 입학해 을강 전홍표 선생으로부터 민족정신과 독립정신을 이어받고, 학교가 일제의 강압으로 문을 닫게 되자 명정학교로 학적을 옮겨 졸업했다.
1913년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하여 3년을 수료하는 사이 조국광복운동의 투지가 거세게 불타올랐으며,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이 방방곡곡에서 봇물 터지듯 일어나자 석정 윤세주를 위시한 동지들과 3월 13일 밀양장날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왜경에 쫓기는 몸이 되어 남만주 봉천(심양) 길림 등지로 피신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고, 의열단에 가담하여 폭탄 제조기술을 익혀 마침내 1920년 12월 27일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스스로 자결을 시도하였지만, 왜경에 체포되어 이듬해 7월 8일까지 살이 타고 뼈가 깎기는 옥고를 치르면서도, 혀를 깨물며 동지들의 정보를 누설하지 않았으며, 사형선고를 받고 대구감옥 교수대에서 독립만세를 높이 외치며 세상을 떠나시니 그 나이 28세였다.
정부는 최수봉 의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1969년 서울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했으며, 국가보훈처는 2016년 12월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최수봉 의사를 선정해 다양한 행사를 펼친바 있다.
한편, 이날 최수봉 의사 순국 제100주기 추념식은 최수봉 의사와 정혼자 김문기 님을 추모하는 살풀이 공연, 시낭독, 시극 등 문화행사가 진행되고 참석자 모두는 살신성인(殺身成仁)한 애국심을 밀양인의 저항정신(抵抗精神)으로 승화시켜 민족과 겨레를 위해 초개(草芥)와 같이 목숨을 던진 위대한 애국자의 장거(壯擧)가 만대에 빛나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최수봉 의사 순국추모비에 기념식수와 함께 국화를 바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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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경 기자 다른기사보기